kassel documenta

​지금 여기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2022년은 어느 해보다 관람할 미술 전시가 많은 해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1년, 2년씩 미뤄진 국제 전시가 많아서인지, 2017년이 연상될 정도로 특히나 유럽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많이 겹치는 한 해. 대표적으로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올해 4월부터 개막하고, 그 뒤를 이어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 외에도 폴 고갱, 데이비드 호크니, 에드워드 호퍼의 대형 개인전 등이 기다리고 있다. 

에디터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전시는 카셀에서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 5년마다 열리는 희소성이 있는 전시여서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카셀 도큐멘타는 1955년에 처음 개최된 미술행사로 나치 정권 아래서 억압받던 모던아트를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documentation, 기록이라는 단어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시의성 있는 주제에서 시작한 만큼 매년 그 시기에 맞는 전시 기조를 설정하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아시아 아티스트 그룹이 전시감독을 맡았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그들은 생태적, 사회적 측면에서 공동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그룹인 만큼 혼란의 시기를 보내는 현시대에 어떤 작품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지금, 카셀에서 보여줬던 '기록'하고 표현하는 방법들을 다시금 돌이켜보며 올해의 도큐멘타를 상상해 본다.

1982, Joseph Beuys

​2차대전에서 독일군으로 참전했을 때 생긴 상처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던 독일의 아티스트, 요셉 보이스는 1982년에 열린 카셀 도큐멘타에서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는 해프닝을 벌인다. 도큐멘타의 전시장은 콘크리트로 급조된, 다소 삭막한 건축물이었다.

떡갈나무를 심기 위해서 콘크리트들을 부수고, 흙을 파헤쳐 숲을 만드는데 수많은 참가자들이 모였고 자발적으로 아티스트가 아닌 일반 시민들은 작품의 일부가 되면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그의 신념을 실제로 이루어주었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요셉 보이스는 100일 동안 카셀 미술관에서 강의하며 그간의 기록들을 모두 기록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는 후문.

몇십, 몇백도 아닌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는 일은 너무도 대형 해프닝이라 요셉 보이스의 타계 이후 그의 아들이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 카셀 도큐멘타에 방문하면 그가 남겨놓은 울창한 숲을 만나볼 수 있다. 한때 기이한 해프닝 정도로 취급받던 그의 프로젝트는 몇십 년이 지난 후 한 도시의 지형을 바꿔놓은 공공미술의 시초가 되었다.

1997, Catherine David

1997년의 카셀 도큐멘타는 일종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전 세계가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술렁일 때 '한 여성 감독이 전시의 총책임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주최 측에서는 오랫동안 회의를 가졌고, 결국 선출된 여성 감독에 대해 대중들은 부정적인 태도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우려와는 달리 전형적인 예술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소개한 방식은 호평을 받았고, 이전과는 다르게 다양한 나라의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로 끌어올렸다. 이때 처음 도큐멘타에 초대받았던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현재 독일의 국민작가가 되었으니, 그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2022년 현재,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고 논란 속의 첫 여성 감독이었던 Catherine David는 파리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의 palais de tokyo의 부관장을 역임했다. 이때 카셀 도큐멘타의 주최 측이 안전하고 익숙한 방법을 택했다면 현재의 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97년에 기획된 전시의 주요 작품들은 오늘날의 대형 전시들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나간 작품들이라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다.

Catherine David,1997

전시 기간 중 가장 큰 작품이자 화제를 끌었던 것은 lois weinberger의 That about plants is one with them이라는 작품. 카셀의 사용되지 않는 기차선로를 따라서 잡초를 심은 이 작품은 강을 지나 지하도까지도 지나가는 긴 거리를 지나게 되는 설치물이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회, 환경, 시스템들이 한 선로를 따라 알려지고 이해받을 수 있던 그에게 잡초들 하나하나가 자라나는 모습은 단순히 하나의 풀 그 이상의 가치였다.

​관람객들이 일정한 거리를 지나며 그 안에서 작품을 관람하도록 설계된 작품은 현재까지도 큰 전시들에서 사용되는 방법으로, 1997년에 이런 방법을 떠올리고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놀라운 프로젝트다. 과거 독일의 군수물품을 조달하는 대표 도시였던 카셀을 다시 재구성하는 요셉 보이스의 방법이 큰 구조물을 부수고 나무를 심는 가시적 프로젝트였다면, 루이스 바인 버거의 방법은 고스란히 남겨진 철로에 하나하나 작은 잡초들을 심는 것이었다.

2017, parthenon of books

2017년, 카셀은 아테네로 눈을 돌렸다. 전시의 기조는 "Learning from Athens"로 당시 그리스의 정치, 금융위기를 의식한 듯한 테마는 당시 논란거리였던 난민 문제나 소수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메인으로 다뤘다. 카셀시 중심에 설치되었던 parthenon of books, 책의 신전은 국가로부터 금지되었던 도서들로 만들어진 파르테논신전이다.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써 차용된 비유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듯하다) 

작품을 설계한 작가 marta minujin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로 1983년 아르헨티나의 독재 정권이 붕괴되던 해에 금지되었던 도서들을 모아 성전을 만드는 '금서 성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이 작품의 시초가 되었다. 카셀에서는 독일 시민들이 자진으로 기부해 총 10만 권의 책이 모였으며, 이 책들은 1930년대 독일의 우익 정권하에서 금지되었던 책들로 카프카와 같은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2022, ruangrupa

첫 여성 감독으로 시끄러웠던 1997년을 지나 어느덧 2022년, 처음으로 아시아의 컬렉티브 그룹이 카셀 도큐멘타의 감독 자리를 맡게 되었다. 공유되는 공간, 한 공동체가 유지되고 나눠지는 가치에 대해 집중하며 실제로 공간을 만들어가던 그들은 현재 카셀에서도 루루 하우스라는 그들이 설계한 공동체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유례없던 아시안 헤이트를 겪고 한 나라가 하루아침에 전쟁터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오늘날 카셀이 쏟아낼 이야기들은 무수할 듯하다. 2022년 독일은, 카셀은, 또다시 새로운 변화에 맞춰 움직일 수 있을까? 5년에 한 번뿐인 이 기회를 이번에는 어떻게 사용할지, 지금 여기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2022/04/01 EDITOR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