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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ers Movie

< May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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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nch Dispatch ]

작년 말 개봉했던 웨스 앤더스의 프렌치 디스패치. 정신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향연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운 좋게도 집안에서 노트북으로 디즈니 플러스의 창을 멈췄다 눌렀다 하며 영화를 본 에디터에게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흥미로운 영화였다. 뉴요커 잡지를 보듯 이야기들의 연관성보다도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삽화처럼 꼭꼭 담겨 있는 구성,

그중 가장 여러 번 돌려봤던 에피소드는 3번째 에피소드로 티모시 살라메와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합을 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 여자 기숙사에 남학생들이 출입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황당한 요구사항으로 시작하는 시위를 바탕으로 하는 이 에피소드는 프랑스의 1968년 5월, 68혁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 동기와 시작점에 대한 무수한 글들이 지금도 써지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누구도 몰랐던 68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

프랑스 파리 근교의 낭테르 대학,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전에 반대하며 성조기를 태웠다는 이유로 6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자 학생운동을 이끌던 다니엘 콘벤티드는 강의실을 돌며 분노한 학생들을 한 데로 모은다. 학생들은 대학본부를 점거하고 베트남전 반대, 프랑스의 대학 시스템에 대한 비판, 권위주의적 사회 타파를 내세워 선언문을 발표한다. 학생들은 모두 징계를 받았지만, 이에 대한 분노가 오히려 더 많은 학생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이후 경찰들이 투입됐고, 무장경찰들이 학생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장면들은 학생들을 넘어 파리 시민들을 함께 싸우게 만들었다. 파리를 넘어 프랑스 전체를 뒤흔든 5월의 열기 속, 바리게이트 뒤의 학생들은 축제와도 같이 혁명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결론으로 빠르게 넘어가자면, 초여름의 혼동 이후 정부와 시민단체 간의 몇 번의 협의가 있었고, 결렬과 함께 맞은 여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여름맞이 바캉스를 떠났다. 이후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제외하면, 67혁명은 그 규모에 비해 무언가 얻어낸 것이 없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 싸운 걸까? 당시 프랑스의 세대 차이나 반미주의, 그 해석은 다양하지만 ‘금지함을 금지하라’라는 문구처럼 체제를 향해 반항하는 그 행동 자체가 목적이었던 건 아닐까?

< THE DREAMERS, 2003 >

미국에서 파리로 유학 온 유학생 매튜와 쌍둥이 남매 이사벨, 테오. 시네마테크에서 만나 가까워진 세 사람은 쌍둥이 남매의 부모님이 여행을 간 틈을 타 한 집에서 함께 한 달간 지내게 된다. 매튜는 곧 이사벨을 사랑하게 되지만 모든 행동, 모든 대화, 모든 외출, 모든 것들은 세 사람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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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관계와 나르시시즘, 감각이 난무하던 영화는 몽상의 끝으로 치닫다 여행을 떠났던 부모님이 돌아오며 끝을 향해 간다. 같은 시점, 창밖의 사람들이 던진 돌에 잠에서 깬 세 사람은 집을 떠나 거리로 뛰쳐나간다. 영화의 초반부터 그들이 사는 파리는 한창 혁명이 진행 중이었지만 그들은 혁명에는 관심이 없다. 길거리 대신 영화관에서, 부모님이 잠시 떠난 집에서, 빈 미술관에서 무엇인가 변하리라는 몽상에 빠져있다. 부모님이 돌아온 집, 기성세대가 다시 돌아온 자유롭지 않은 공간에서 거리로 나간 것은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68년 파리의 젊은이들에게 거리란, 도피처이자 꿈보다도 몽상을 위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 Sega Bodega >

​이야기는 68년 5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프랑수아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돌과 화염병들을 던지며 시위에 참여하지만 아버지의 재산으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그를 친구들은 부르쥬아라고 부른다. 괴리감을 느끼던 중 만난 릴리, 조각가이던 릴리와 금방 사랑에 빠진 그는 동거를 시작하고, 함께 대마를 피우며 그해 5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릴리는 작업장의 상사를 따라 모델 일을 제안받아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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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라인만을 살펴보면 영화는 몽상가들과 배경도 인물들의 상황도 유사해 보인다. 다만 이 영화의 감독 필립 가렐은 실제로 68년 5월 파리의 거리에 섰고 그 시기를 전후로 하여 영화를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몽상가들의 꿈꾸듯 몽환적인 색감과는 달리 이 영화는 단조로운 흑백과 피아노 선율, 대사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속에서 시위를 준비하던 한 여학생은 관객을 응시하며 “잘 들어, 베르톨루치”라며 몽상가들 영화감독의 이름을 외친다. 몽상가들 속 주인공들은 도피를 위해 또 하나의 몽상을 위해 거리를 선택했지만 그 이전에 거리에 사람들이 모이게 만든 이들이 있었다.

< FRENCH DISPAT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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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앞서 언급한 프렌치 디스패치로 돌아와보자. 어찌 보면 68혁명의 시초이자 원인을 만든 장본인, 미국에서 태어난 감독 웨스 앤더슨은 어찌 보면 역이민을 온(유럽 > 미국이 아닌 미국 > 유럽을 선택한) 이방인이었다. 미국인 감독은 68혁명의 복잡한 배경을 비유를 넣어 덜어내고(참전을 포기했던 학생과 전쟁을 거부했던 학생의 축약적이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짧게 들어갔다) 학생들이 시위를 위해 모였던 장면들과 금지함을 금지하라는 문구가 쓰이던 때의 상황을 그려낸다.

 

극에 미국인을 등장시키거나 한 인물이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식으로 비유하던 위의 두 감독들과 다르게 웨스 앤더슨은 젊은 층을 상징하는 역으로 시위대의 부회장 격인 여성 인물을, 기성 사회를 상징하는 역으로 언론인인 프란시스 맥도먼드를 배치한다. 학생회장 역할이었던 티모시 살라메는 총대를 메고 있지만 그가 쓴 뒤죽박죽인 선언문을 고쳐주는 이는 언론인 프란시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티모시의 (영화 속) 죽음 이후 그것을 기록하는 이 또한 프란시스이다. 언론인의 중립을 지키는 것을 내내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녀는 그의 죽음을 아래의 글과 같이 기록한다. 나이든, 조언을 주는 여자는 분명 프랑스의 기성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읽고 총괄하던 편집장은 웨스 앤더슨이 본인과 동일시했던 배역이 아닐까.

이방인으로서, 프랑스에 대한 영화를 일생을 바쳐 만들던 이의 68혁명에 대한 헌사

- 그는 궤도에서 속도를 높여 우주 시공간 속의 은하계 외곽을 향하는 무적의 혜성이 아니다.

- 그보다는 젊어서 죽을 청년이다. 그는 이 별에서 익사할 것이다.

- 이 장구한 도시의 혈관을 타고 밤낮으로 흐르는 깊고 더럽고 웅장한 강의 차분한 물결 속에서 그의 부모는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기계적으로 옷을 입고 말없이 손을 잡고 차갑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러 갈 것이다.

- 그의 이미지는 대량 생산되어 영웅을 좇는 이들에게 풍선껌처럼 팔릴 것이다. 자신들을 이렇게 보고 싶은 이들에게. 젊은이    들의 감동적인 나르시시즘.

3월 30일, 거리 전체에 흐르는 확연한 은유.

종이 치고 학생들은 순종적인 교실로 돌아간다.

텅 빈 운동장에 그네 하나가 삐걱댄다.

2022/06/24/EDITOR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