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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ers Movie

< 박찬욱과 정성일 >

까마득한 예전 라따뚜이를 보며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글이나 쓰는 평론가가 뭐길래 저렇게 오만하게 누군가를 깎아내리나, 하고 생각하던 기억이 있다. 직접 영화 속으로 들어가 평가를 할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 저명한 음식평론가-안톤이고는 절대자와도 같은 역할을 맡고서 무엇이 맛있고 무엇이 형편없는가를 판단한다. 다행히도 이 영화 속에서 그는 추억의 맛을 맛 보고서 깐깐한 무표정에서 온기를 되찾았지만, 현실이었다면 아마도 몇 달 뒤쯤 ‘언제나 똑같은 레퍼토리를 보여준다’ ‘신선함이 부족하다’라는 식의 코멘트와 함께 셰프 래미를 압박하지 않았을까? 저명한 평가를 내리는 이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 그들은 영원히 상생할 관계이면서도 영원히 같은 입맛을 가질 수 없는 쫓고 쫓기는 관계와도 같다.

미식가와 셰프의 관계처럼,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의 관계 또한 그 못지않게 살벌하다. 맛에 대한 평가는 함축적이고 명료하기라도 하지, 영화평론가의 글은 때로는 해독하는 것이 피로해질 정도로 길어지기도 한다. 그 낭만의 시대에 거트루드 스타인이 헤밍웨이를 발견해 내고 전설적인 평론가 폴린 카엘이 시민케인을 단두대에 올려놨던 것처럼 다정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관계가 한국 영화계에도 존재하니, 한국의 1세대 시네필 중 한 명이 자 평론가인 정성일과 영화감독 박찬욱이다. 정성일의 입맛은 어떠했길래 박찬욱의 영화들에 그렇게 가혹했는지, 그가 사랑하는 영화들과 함께 열어보는 그들의 이야기.

< Jean-Luc Godard >

프랑스의 누벨바그 운동의 핵심 인물이 자 누벨바그 그 자체와도 같은 인물. 지루하지 않은 영화, 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장 뤽 고다르는 대본 없이 영화를 찍고, 계획되지 않은 순간순간들을 포착해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던 독특한 감독이었다. 이미 존재 자체로 살아있는 거장인 인물이지만 그의 영화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영화를 볼 때처럼 내러티브를 따라 이해하는 게 어렵고, 영상뿐만 아니라 콜라주처럼 등장하는 글자와 그림, 사진들이 온갖 오묘한 은유의 세계로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그 순간만에 담길 수 있는 장면들과 흔히 예측 가능한 방향을 벗어나 진행되는 뻔하지 않은 반전성이 공존한다. 1970년대 고다르의 영화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고, 이후에도 그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드러냈던 정성일은 그래서인지 정확한 플롯을 정해놓지 않고 당일 아침에 대본을 써 영화를 제작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애정 어린 평을 자주 남겼다.

< 임권택 >

임권택은 영화들은 향토적이다. 그의 대표적인 영화들의 이름만 놓고봐도 알수있을 정도. 춘향전, 태백산맥, 취화선, 개벽,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등. 1960년대에 처음 입봉한 그는 1960-70년대에 몇십편의 영화를 만들어냈는데, 그 내용은 모두 반공,반일 등으로 당시 정부에서 해외영화에 대항할 대책으로 무분별하게 만들어냈던 저예산 영화들이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몇십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며 숙련된 그는 한국의 역사(개벽의 동학농민운동)나 전통소설(춘향전)등 한국적 색채를 담아내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춘향뎐은 예고편 영상의 화질이나 영화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8-90년대에 개봉했을법한 느낌을 주지만 2000년에 개봉한 영화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미 유명한 플롯에 어떤 변주도 없이 제작된 이 영화는 국내에서 예술영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발견에 의의를 두어 평가되었던 듯 하다. 임권택이 이후에 다시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했던 이전의 다작들까지, 정성일은 그의 영화에 대한 책을 쓸 정도로 그의 오랜 팬이었다. 그건 아마도 한국적 모티브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애정이었을까? 임권택에게는 그렇게도 옹호적 비평을 남기던 그는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한국 영화이지만 한국이란 국적성을 탈색시키기까지 할 정도로 국적성이 없다.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미학에 집중한 채 한국이라는 국적 자체가 낯선 작가주의는 결국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영화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자신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한 상태로 함께 외국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 이유를 이제야 얼핏 알 거 같다.”

< Apichatpong Weerasethakul >

2000년대 이후로 데뷔한 감독들 중 가장 촉망받고 있는 태국 출신 영화감독이자 설치미술가.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뒤섞인 초기작부터, 판타지 요소를 대놓고 등장시킨 최근작까지, 모든 영화들은 특정한 내러티브 없이 영화 자체의 구조를 뒤틀고 실험한다. 데뷔한지 4년 만에 열대병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상을, 2010년에는 엉클 분미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괴물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는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특유의 성스러울 정도의 고요함이 영화 전반을 감싸고, 고요한 대신 인물들 간의 관계에 집중하게 만드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어떠한 감정의 발단과 절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성일은 아피찻퐁 감독의 유명한 팬으로 ‘미장 정글’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태국의 오리엔탈리즘에서 기반한 영화 속 정적인 풍경을 극찬한 바 있다.

< 헤어질 결심 >

정성일의 미각 세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박찬욱과 정성일의 인연으로 되돌아온다. 둘의 인연은 박찬욱이 영화감독으로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던 때, 영화평론가로 일을 하던 때로 거슬러간다. 30년이 넘은 사적으로 친한 형 동생 사이이지만, 정성일이 긍정적인 평을 남긴 영화는 박찬욱을 극적으로 살렸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뿐이었고 그 이후로부터는 날선 평가들이 이어졌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정치적 모순과 더 치밀하게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친절한 금자 씨에서는 영화에서 끝을 맺지 않았던 선과 악의 경계의 모호함에 대해서. 또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박찬욱은 그렇지만 계속 만들던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가 사랑했던 히치콕 영화와 프랑스 영화들, 복수 시리즈, 영화 속 장면의 미감. 자신은 예술영화인 척하는 상업영화감독이라고 이야기하며 아름답게 설계된 세트장 안에서 빛을 사용해 촬영하고 편집을 이용해 만들어냈다. 그 배경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어느 곳으로 보이는지에 상관없이.

박찬욱과 정성일은 씨네 21잡지 기획인터뷰에서 장장 7시간 동안 ‘참으로 영화적인 것, 시네마틱 한 것’에 대한 대토론을 나눈 적이 있다.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답은 상이한데, 박찬욱에게 있어서 그 대답은 ‘빛과 편집’ 이었고 정성일의 대답은 ‘바람’ 이었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바람처럼 흘러가는 현재의 시간을 물질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예술매체는 영화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한순간에 영화가 중요한 무언가를 찍었다는 것. 즉흥성. 그는 이것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헤어질 결심’을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나라에 있는 에디터는 이 영화가 너무 궁금해 찾을 수 있는 모든 평론을 찾아보았다. 혹자는 박찬욱이 드디어 만들고 싶던 영화를 만든 것 같다는 평을 남겼다. 그는 한 인간에 대한 복수극을 넘어, 무언가를 깨고 편견과 뻔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여자가 등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국인 남자와 의심스러운 상황들, 형사들의 사무실은 아름답고, 뻔하지 않은 장소에서 뻔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 무진기행이 떠오르는 모호함을 남겨놓는 안개까지. 영화는 질문한 것에 대해 꼭 답을 내려야 한다는 엄포를 내렸던 정성일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한국 영화감독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상업성과 평단,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노장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지 궁금해진다. 안개는 경계를 흐리게 만들 수 있을까.

2022/07/08/EDITOR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