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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ers Music

< LOVE AFFAIR >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꼭 한 명쯤의 뮤즈이던, 조력가이던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때때로 배신당하거나 상처받고 의도치 않은 차이들로 멀어지지만 그래도 함 께했던 시간들은 서로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모두가 존레논과 오노요코처럼 서로에게 영원히 아름답게만 기억될 수는 없겠지만, 현실은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금 추잡하고 질척하겠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는 말은 그래도 로맨틱하지 않은가? 서로가 서로의 뮤즈가 되어 따로 또 함께했던 커플들에 대해, 완전한 타인이 남기는 추측 섞긴 회고록.

폴토마스앤더슨과 피오나애플은 1997년, 부기나이트로앤더슨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해에 처음 만났다. 포르노 산업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신예 감독과 과거의 성폭행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막 꺼내기 시작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관계는 처음부터 위태로웠다. 2020년 피오나애플은 과거를 회상하며 혼란스러웠고 중독성이 강한 관계였다고 언급했다.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 (그가 만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엑스타시와 코카인에 중독된 날들을 보냈던 것, 아카데미 각본상을 굿 윌 헌팅에 빼앗겼던 날 창밖으로 의자를 던져대며 분노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것, 달리는 차에서 그녀를 내리게 하고, 소리를 지르던 모습들. 피오나 애플에게 앤더슨은 그렇게 남았다.

< PTA & FIONA AP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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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던 3년간의 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서 신예가 아닌 거장에 가까운 인물들 이 되었다. Pta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한 남자가 사랑을 찾는 이야기 (펀치 드렁크 러브)로 칸영 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석유와 야망이 들끓는 영화(데어 윌 비 블러드)로 베를린에서는 은곰상을, 그의 세계의 정점으로 일컬어지는 마스터로 베니스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3 대 영화제에서 모 두 수상한 감독이 되었다.

피오나애플은 큰 스타일 변화를 시도했던 앤더슨과 달리 내면 안으로 파고든다. 2000 년 이후로 두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8년 만에 발표했던 fetch the bolt cutters로 피치포크 10 점, 메타크리틱 98 점이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달성한다.

얼마 전, 이전에 에디터가 할리우드 종합세트와 같은 느낌으로 소개했던 리코리쉬피자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이 영화가 폴 토마스 앤더슨 자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담은 영화 같다는 것. 앤더슨 자신이 이 영화를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영 화 속의 주인공들은 피오나와 앤더슨을 떠오르게 한다. 기름통으로 자위하는 시늉을 내는 어린 남자들과 껄떡대는 어른 남자 사이에서 절망하는 모습이라던가 (한 인터뷰에서 피오나는 쿠엔틴타란 티노와 앤더슨이 수많은 마약을 하며 서로 허세를 부리던 날 마약을 완전히 끊었다고 언급한 바 가 있다)

 

영화에서 얼핏 등장하는 오브제들, 물 침대는 앤더슨의 출세작 부기나이트를 연상시키고 기름 통과 트럭은 데어윌비블러드의 석유를, 핀볼장의 화려함과 혼란함은 그의 초기영화 속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부당함을 울부짖던 여자와 마초적 세계관으로 미국영화계에서 명성을 쌓은 남자의 연애가 끝이 난지 20 년도 지난 지금, 거만하던 남자는 정말 어린 날의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진실은 그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마틴 스콜세이지를 사랑했던, 석유와 질주하는 차를 동경하던 남자는 이제 지나쳐온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 Kim Gordon & Thurston Moore >

앨범 커버가 힙한 이미지가 되면서 수면 위로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한 얼터너티브 밴드 음악의 시초, 소닉유스. 킴고든과 더스턴무어는 이 밴드의 베이스와 기타를 담당하던 프론트우먼과 프론트맨인 동시에 부부 사이였다. 킴고든은 음악이 아닌 미술을 배우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지만, 이후 nowave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락음악을 다루는 일종의 크루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베이스를 익히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보다도 뭔가 익스트림한 것을 해보고 싶어 베이스를 배웠다는 그녀는 당시 현대 미술가이면서 작곡가였던 존케이지에게서 영향을 받은 노이즈가 강하면서 신경질적인 밴드 음악을 만들어낸다. 같은 무리에서 더스턴무어를 만나고, 너바나와 서로 영향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들은 2011년 더스턴무어의 바람으로 이혼하게 되면서 해체되었다.

< MOVE TO NEWY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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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폴록을 좋아하고 캘리포니아에 살던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느끼는 어린 시절을 보내왔던 킴 고든은 뉴욕에서 더스틴 무어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며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히피 열풍이 가득하던 시절에는 너무 어렸지만 시위를 나가는 것에는 익숙했다”고 말하는, 저항과 반항으로 가득했던 소녀가 입은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티셔츠,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은 큰 인기를 얻었고, 그녀의 이미지가 곧 소닉유스의 정체성이 되었다.

KIM G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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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가 소음만으로 가득 찬 저항의 상징에 서 여러 번의 소속회사의 변경과 함께 스타일을 바꾸어가며 대중적으로도 사랑받는 밴드가 되어 가는 동안 킴은 베이스 실력보다도 외모로 더욱 주목받아 갔다.

이 시기를 거쳐오며 더스틴무어와 킴은 언론에서 그녀의 패션을 분석하는 것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한다. 선정적이라고 검 열받았던 티셔츠 속 문구와 어두운 메이크업, 초커 목걸이와 같은 퇴폐적이다, 시크하다고 불려지는 모든 것들은 쿨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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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 OF SONIC YOU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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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음악적 동료이자 파트너로 함께 해온 그들이 헤어지며 소닉유스도 2011년 끝을 맞이한 다. 헤어짐의 아픔도 잠시, 두 사람은 길었던 잠정적 해체 기간을 정리하고 서로의 밴드를 만들었고 특히 킴은 밴드 활동 이외에도 책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2015년 그녀가 발 간한 책의 이름은 ‘GIRL IN A BAND’로 밴드에서의 유일한 여성 멤버를 맡아 활동하며 느낀 점들을 담아낸 회고록이다. 이후 303 갤러리에서 미술가로서의 데뷔를 시작으로 아일랜드의 현대미술관, 펜실베니아의 워홀박물관 등에서 전시를 하던 그녀는 공백기를 깨고 마침내 2019년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일평생 무언가에 반기를 드는 태도로 살아왔던, 이제는 살아있는 그런지의 대모 정도로 불리는 킴고든은 평범한 학생에서 예술가를 꿈꾸던 때, 갑자기 유명 밴드의 프론트우먼이 되어 베이스를 연주하던 때, 또 현대 미술가가 되어 상업적인 면을 고려하는 아티스트가 된 자신을 돌아보며 삶 이 바뀌는 순간마다 바뀌던 주거지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담은 NO HOME RECORD 앨범을 만들었다. 성인이 되며 이주해왔던 곳인 뉴욕, 뉴욕에서 만난 더스틴무어와 밴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으로 여겨온 공간이 갑작스러운 이별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일, 앨범을 듣고 있으면 후회도 원망도 아닌 덧없는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끔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 행적들에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소닉유스가 사라진 이후 작품활 동에 매진할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사랑하면서, 왜 젊은 시절의 20 년은 오직 밴드 활동만을 계속 해왔을까? 같은 선생님에게서 기타를 배우며 더스틴무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킴고든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긴 기간의 사랑과 커리어가 한순간에 사라진 자리를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채웠다. 어떤 연애는 한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도 하지만, 어 떤 자아와 열망은 너무 단단해서 모든 것이 쓸려간 자리에서도 무너져버리지 않는다.

2022/06/03/EDITOR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