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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ers Movie

STAND WITH UKRAINE

희망에 대해

작년쯤부터 I'm from Southkorea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자동으로 듣게 되는 말은 'Squid game'이었다. 또는 'parasite' , 넷플릭스의 애청자라면 뒤이어 나온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을 봤다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물론 그것들을 봤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일련의 폭력이 가미된 드라마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들도 나도 궁금해지게 된다. 경쟁,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 폭력과 스릴, 이런 것들이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인기 있는, 우리가 관심 있어 하는 전부일까?

파친코는 이전에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했던 드라마들과는 결이 다르다. 어떤 극적인 상황과 장치들을 떠나 실제 재일교포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 아닌 픽션이며, 극적이고 선악이 분명한 인물이 아닌 상황과 시대를 겪어가던 인물의 심리를 내밀하게 그려냈다. 이미 베스트셀러이던 원작부터 낯선 배우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촬영 현장과 제작자들까지, 이 흡입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낸 요소들이 궁금해졌다.

AUTHOR : Min Jin Lee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재일교포인 '자이니치'였지만 작가 이민진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이주했다. 쥐가 나오는 뉴욕 퀸스의 작은 집에서 시작해, 미국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은 '성공한 이주민'을 향한 여정이었지만 몇 년 되지 않아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고 그때부터 그녀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출간되었던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부모를 따라서 어린 시절 이민 온, 교포 1.5세대에 대한 이야기. 사실적이고 개인적인 내러티브를 담은 이 작품은 뉴욕시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주목을 받았지만 작가는 책을 출간한 이후 이런 식으로 책을 쓰게 된다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재일교포 남편과의 결혼, 일본으로 이주하며 살던 그녀는 일본에서 '자이니치' ,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고, 방대한 몇 십 년간의 인터뷰가 파친코의 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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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편의 독립영화들로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감독, 코 고나다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특이하게도 본명이 아닌 각본가 노다 코 고의 이름을 빌려와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일본 출신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비디오 에세이를 주로 만들었으며, 오즈 야스지로, 스탠리 큐브릭, 로베르 브레송 등의 영화들에서 특정 장면들을 가져와 영상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히치콕의 눈이라던가, 브레송의 손과 같은 것들.

영화광들만이 가지고 있는, 영상을 세세하게 사랑하는 감각을 가진 그는 데뷔작 콜럼버스에서 공간과 인물들을 가지고 섬세하게 영상을 만들어낸다.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짧은 영상들부터 독립영화로, 그리고 파친코까지도 이어지는 작업물들은 강한 개성보다도 섬세한 감각과 시선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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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전은 코 고나 다처럼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온 교포 1.5세대다.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했던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아 배우수업을 들었던 그는 미국에서 동양인이 맡을 수 있는 작은 역할들부터 트와일라잇의 한 역할까지, 배우로서의 커리어들을 쌓고 감독으로 전향했다. 

그의 첫 데뷔작인 blue bayou,(푸른 호수)는 그가 겪어왔던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담았다. 이야기의 모티브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서 따왔으며, 실제로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고 추방하는 이들이 2020년 기준 1만 8천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코 고나다의 섬세하고 작은 오브제들까지도 담아내는 디렉팅과는 조금 다르게, 저스틴 전은 극적인 빛과 강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파친코의 1,2,3화는 코 고나다가 디렉팅을 맡고 4화부터 8화까지는 저스틴 전이 감독을 맡았는데, 4화부터 감정의 소용돌이가 거세지는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비슷한 듯 다른 환경과 스타일을 거쳐온 두 감독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만의 매력인 듯하다.

ACTOR1 :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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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는 서울에서 태어나 2016년 데뷔한 배우로, 웹드라마에서 처음 데뷔해 주로 단역이나 독립영화에 출연해왔다. 할머니에게서 배역에 대해 자문을 구하며 "네가 이런 배역을 연기할 수 있지만 연기라 해도 이런 경험을 겪는다는 것이 안타깝다."라는 말을 들었다던 그녀는 '선자'라는 배역과 자신이 가진 공통점, 힘과 연약함에 집중하며 처음 배웠다던 사투리까지도 완벽하게 구사한다.

제작사인 애플tv에서는 모든 한국 출연진에게 인터뷰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전 출연작인 미나리로 상을 쓸어 담았던 윤여정도 간단한 카메라 테스트를 거치고, 이민호 또한 몇 년 만에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얻었다. 쟁쟁한 배우들이 자리한 가운데 정작 여주인공은 익숙하지 않은 배우가 맡아서 처음에는 교포 출신이거나 신인배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기의 디테일도 좋지만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던 것은 김민하의 눈이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녀의 눈은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윤여정의 삶을 미나리가 완전히 바꾸어놓았던 것처럼 파친코가 김민하에게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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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2 : 박혜진

파친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윤여정이 나오는 장면에서 주목하게 된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버린, 거장의 연기를 보는 느낌으로. 그런데 뜻밖에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있었으니, 연극배우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던 박혜진이다. 윤여정과 함께 하는 장면이 많음에도 존재감이 밀리지 않는, 정말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4화의 마지막으로 향해 갈 때의 계약 장면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못하겠지만, 장면 속 배우의 목소리부터 표정 하나하나까지, 모든 요소들이 왜 지금껏 이 배우가 알려지지 않았나 의아해지게 만든다. 극 중에서는 비중이 많지 않지만 땅 계약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인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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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파친코였을까? 신문 가판대 일부터 시작해서 보석상을 운영했던 이민진 작가의 부모님처럼, 과거 이주민들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번듯한 회사에 취직을 하지도,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던 그들이 선택한 것 중 하나가 게임장(혹은 도박장) 이었던 파친코였다.

 

시대상을 제외하고도 파친코라는 장소가 시사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우리는 베팅을 해야 한다는 점. 어떤 보상, 금액을 바라고 돈을 걸지만 그 내부의 기계와 구조를 보면 어떻게든 이익은 운영자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하나는 오락의 장소라는 것. 이민진 작가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기 위해 잘 읽히는,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선물처럼 만들었다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그러한 흔적이 보인다. 대하드라마의 무거운 오프닝 대신 인물들은 춤을 추고 뒤에서는 let's live for today가 울려 퍼진다.​

역사만을 보는, 시대의 아픔만을 이야기하던 이들과 무관심한 척 모든 것을 회피하던 이들로 나누어져 있던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역사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지나간 시간이 시사하는 것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파친코가 시작한 개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그 사이 간극을 메꿔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